대전(大田)은 큰 밭이라는 뜻이다. 대전(大田)은 한국말인 한밭이 한자화된 이름이다. 한밭으로 부르던 이름이 조선 초기에 이르러 한자인 대전(大田)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한밭의 한은 크다는 뜻임. 그래서 한의 대(大)로 번역하고, 밭은 한자로 전(田)을 사용하여 대전(大田)이 되었음. [4]
지역 지리
대전광역시는 대한민국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세종특별자치시, 북동쪽으로 충북의 청주시·보은군, 동쪽으로 옥천군, 남쪽으로 금산군, 남서쪽으로 논산시·계룡시, 서쪽으로 충청남도 공주시와 접함.
서울까지는 167.3km, 부산까지는 238.2km, 광주까지는 169km의 거리에 있는 남한의 심장부에 위치하여 중도라고도 불리움.
경부·호남·대진고속도로, 국도 및 철도가 경부선과 호남선으로 분기하고 있어 교통의 요충지로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어 대전은 더욱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함.
대전의 행정구역은 대전부가 1949년 대전시로 개칭된 때 35.7㎢ 이었고, 1963년에 88.21㎢이었으며(대덕군 유천면 전 지역과 산내면·회덕면 일부가 편입되었음), 1983년에는 203.80㎢(대덕군 회덕면·유성읍 전역과 구즉면·탄동면·기성면·진잠면 일부가 편입되었음)의 면적에 2구 60개 행정동으로 시세가 확대되었다.
1989년 대덕군 편입과 함께 대전직할시로 승격, 5개 구로 설치되었으며, 1995년에는 대전직할시에서 대전광역시로 명칭 변경되었다.2024년 12월 말 행정구역은 539.7㎢, 이중 면적은 유성구가 176.6㎢로 가장 넓고, 인구는 2024년 12월말 현재 관공서, 상업시설이 밀집되고 주거 및 교육시설이 밀집된 서구가 457,951명(외국인 제외)으로 가장 많다. 동구·중구·서구·유성구·대덕구 등 5개구 82개동으로 행정조직이 편성되어 있으며, 2024년 12월말 행정구역 법정동 및 행정구역 현황은 아래와 같다.
거주 인구 수:1,442,228명(2025.9월기준)>서울: 9,318,500(2025.9월기준)[6]
자연 지리
시의 서북쪽에 계룡산, 남서쪽에 구봉산, 남동쪽에 식장산, 동북쪽에 계족산 등 일련의 산지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 상에 발달한 도시이다. 수계는 대전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계를 중심으로 남북방향을 보이며 서부에서는 갑천과 합류하여 북류한후 금강과 합류한다. 대전분지 중앙의 하천연변에는 충적평야가 넓게 발달되어있고 이 충적지와 분지주변의 산지사이에는 경사가 극히 완만한 산록완사면이 발달되어있어 충적지와 함께 농경·거주·산업활동의 기반이 되어왔다. 대전의 지형은 크게 보아 분지의 중앙으로부터 하천유역의 충적지, 산록와사면 배후산지 등으로 이루어졌음.
지형과 산맥
대전의 지형은 차령산맥과 소백산맥사이에 있으면서 식장산, 보문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으로 산지는 동·서·남쪽 방향에서 뚜렷이 드러나 있음.
동쪽: 동구 세천동으로부터 함각산(314.5m), 개머리산(365m), 계족산(423m), 고봉산(309m), 식장산(580.67m)등이 충청북도 옥천군에까지 이어짐.
서쪽: 우산봉(573.8m), 도덕봉(534m), 관암산(526.56m), 백운봉(536m), 빈계산(415m)등 계룡산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산계가 논산군 두마면까지 이어짐.
남쪽에: 보문산(457.3m), 구봉산(264m)이 동서방향으로 불규칙한 산릉을 이룸.
북쪽에: 금병산(364m)이 있고 그린벨트와 녹지지역이 전체 면적의 75%에 달하여 청정한 자연환경을 이룸.
지형과 하천
대전천·유등천·갑천이 북류 혹은 북동류하여 시의 북동부 지점에서 금강 본류로 유입하고 이들 하천 주변의 평지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발달해 있다.
기후
여름은 덥고 겨울에는 추운 대륙성 기후특성
연평균 기온: 13.1˚C,
연평균 강수량: 1,458.7mm
8월 월평균기온: 26˚C(서울 34℃정도), 1월 월평균기온: -1.0˚C(서울 –9.7℃정도)
우암사적공원(남간정사)(대전 동구 충정로 53 남간정사): 송시열은 학문을 닦던 곳으로 1991년부터 1997년까지 1만 6천여 평에 장판각, 전시관, 서원 등 16동의 건물을 복원해 사적공원으로 새롭게 탄생. 이곳은 선생이 말년에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에 정진하던 남간정사, 건축미가 뛰어난 기국정, 송시열 문집인 송자대전판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가 보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공원 곳곳이 잘 단장되어 있어 도심 속 시민들의 쉼터로도 제격.
동춘당(同春堂) : 송준길(1606∼1672)선생의 별당(別堂).'동춘'은 '늘 봄과 같다.'는 뜻으로 이곳에 걸린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6년 후 숙종 4년(1678)에 우암 송시열이 씀.
송시열은 여덟살 때부터 친척되는 송이창(宋爾晶)에게서 글을 배움. 송이창은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아버지인데 그때부터 공은 자기보다 위인 송준길과 같이 공부하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 일생을 두고 학문과 정치 생활에 있어 그와 고락을 같이 하는 사이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