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석 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역지사지(歷地思之) - 역사지리정보(HGIS) 위키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Usic62 (토론 | 기여)
새 문서: == 기본 정보 == * groupid: 초교 * 자치구: 종로구 * 이력: 2022년 신설 * 2024년 7월 31일 기준 다른 표석의 이력은 상위 문서 현대_표석_이력을 참조. == 제목과 문안 == * 2022년 <초교 터> 초교는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흥덕동천과 종로대로가 만나는 곳에 놓여 있던 돌다리다. 초교는 동대문을 지나 도성 안으로 들어올 때 처음 건너는 다리라는 의미다. 돌로 만들어져서 '초...
 
Usic62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3번째 줄: 3번째 줄:
* 자치구: 종로구
* 자치구: 종로구
* 이력: 2022년 신설
* 이력: 2022년 신설
* 특이사항: 삽도(작게 삽입된 지도)를 수록.
* 2024년 7월 31일 기준 다른 표석의 이력은 상위 문서 [[현대_표석_이력]]을 참조.
* 2024년 7월 31일 기준 다른 표석의 이력은 상위 문서 [[현대_표석_이력]]을 참조.


== 제목과 문안 ==
== 역대 표석문안 ==
* 2022년
* 2022년
<초교 터> 초교는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흥덕동천과 종로대로가 만나는 곳에 놓여 있던 돌다리다. 초교는 동대문을 지나 도성 안으로 들어올 때 처음 건너는 다리라는 의미다. 돌로 만들어져서 '초석교(初石橋 첫다리)'라고도 불렸고, 도성 동쪽에 있어서 '동교(東橋)'라고도 불렸다. 조선 시대 임금이 선농단과 왕릉에 행차할 때 이 다리를 지나다녔으며 너비는 8미터 정도였다.
<초교 터> 초교는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흥덕동천과 종로대로가 만나는 곳에 놓여 있던 돌다리다. 초교는 동대문을 지나 도성 안으로 들어올 때 처음 건너는 다리라는 의미다. 돌로 만들어져서 '초석교(初石橋 첫다리)'라고도 불렸고, 도성 동쪽에 있어서 '동교(東橋)'라고도 불렸다. 조선 시대 임금이 선농단과 왕릉에 행차할 때 이 다리를 지나다녔으며 너비는 8미터 정도였다.

2026년 1월 26일 (월) 13:46 기준 최신판

기본 정보

  • groupid: 초교
  • 자치구: 종로구
  • 이력: 2022년 신설
  • 특이사항: 삽도(작게 삽입된 지도)를 수록.
  • 2024년 7월 31일 기준 다른 표석의 이력은 상위 문서 현대_표석_이력을 참조.

역대 표석문안

  • 2022년

<초교 터> 초교는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흥덕동천과 종로대로가 만나는 곳에 놓여 있던 돌다리다. 초교는 동대문을 지나 도성 안으로 들어올 때 처음 건너는 다리라는 의미다. 돌로 만들어져서 '초석교(初石橋 첫다리)'라고도 불렸고, 도성 동쪽에 있어서 '동교(東橋)'라고도 불렸다. 조선 시대 임금이 선농단과 왕릉에 행차할 때 이 다리를 지나다녔으며 너비는 8미터 정도였다.

사진

  • 썸네일을 클릭하면 위키 뷰어를 통해 원본 크기로 열람 가능함(원본을 온전히 불러오기까지 약간 시간이 걸릴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