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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歷地思之) - 역사지리정보(HGIS)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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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읍성은 1439년, 세종 21년에 관아와 행정 소재지를 왜침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평지에 쌓은 평지읍성으로 천주교 박해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투가 치러지는 등 역사적 사건의 주요 무대이다. 2007년부터 대규모 복원이 진행되어 현재 남문과 옹성, 장청 등이 복원되었으며, 읍성 안에는 1,100살이 된 은행나무 2그루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면천은행나무를 신목으로 여겨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목신제를 지내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 551호로 지정된 은행나무입니다. 은행나무 아래에 군자정을 지나면 연암 박지원이 직접 설계해 지었다는 건곤일초정과 봄에는 벛꽃이 여름에는 연꽃이 절경인 골정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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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향교(沔川鄕校)는 고려 후기[또는 조선 전기]에 설립되어 면천의 중등 교육을 담당하던 대표적인 유교 교육 기관이다. 일반적으로 향교는 선현의 제사를 받들고 후진을 양성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곳으로, 조선 후기 등장한 서원과 함께 지방 중등 교육의 중추 기관이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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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읍성은 1439년, 세종 21년에 관아와 행정 소재지를 왜침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평지에 쌓은 평지읍성으로 천주교 박해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투가 치러지는 등 역사적 사건의 주요 무대이다.
면천향교(沔川鄕校)는 고려 후기[또는 조선 전기]에 설립되어 면천의 중등 교육을 담당하던 대표적인 유교 교육 기관이다. 일반적으로 향교는 선현의 제사를 받들고 후진을 양성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곳으로, 조선 후기 등장한 서원과 함께 지방 중등 교육의 중추 기관이었다.
2007년부터 대규모 복원이 진행되어 현재 남문과 옹성, 장청 등이 복원되었으며, 읍성 안에는 1,100살이 된 은행나무 2그루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면천은행나무를 신목으로 여겨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목신제를 지내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 551호로 지정된 은행나무입니다. 은행나무 아래에 군자정을 지나면 연암 박지원이 직접 설계해 지었다는 건곤일초정과 봄에는 벛꽃이 여름에는 연꽃이 절경인 골정지가 있습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2023년 6월 10일 (토) 11:0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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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향교(沔川鄕校)는 고려 후기[또는 조선 전기]에 설립되어 면천의 중등 교육을 담당하던 대표적인 유교 교육 기관이다. 일반적으로 향교는 선현의 제사를 받들고 후진을 양성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곳으로, 조선 후기 등장한 서원과 함께 지방 중등 교육의 중추 기관이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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